친구가 동남아 프리다이빙 여행에서 돌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고요함이 너무 좋아."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되려 더 커졌습니다. 인간이 맨몸으로 닿을 수 있는 깊이도 그렇게 낯선데, 햇빛조차 닿지 않는 수천 미터 심해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지금 그 심해를 두고 여러 나라가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심해 바닥에 깔린 '검은 감자', 망간 단괴하와이 동남쪽,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Clarion-Clipperton Zone)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수심 약 4,000m의 해저에 빛을 비추면 검고 울퉁불퉁한 암석 덩어리들이 바닥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크기는 지름 5~10cm 정도로 꼭..
여름 저녁, 친구 손에 이끌려 동네 뒷산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이 산에도 곰이나 호랑이가 살았겠구나.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죠. 북극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쪽은 동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조합이 새로운 종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회색곰과 북극곰 사이에서 태어난 그롤라 베어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기후변화가 만들어낸 교배, 그롤라 베어의 등장2006년, 캐나다 북부 색스 하버에서 사냥꾼 짐 마텔이 이상한 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털은 북극곰처럼 희었는데, 얼굴 구조는 영락없이 회색곰이었습니다. 짧은 주둥이, 솟은 어깨, 굽은 등. 캐나다에서는 원주민 동행 하의 북극곰 사냥은 합법이지만 회색곰 사냥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당국은 DN..
솔직히 저는 남해 항구에 갈 때마다 한쪽에 쌓인 그물을 그냥 '어부의 일상 풍경'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이 바닷속에서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은 채 물고기를 계속 잡아 죽인다는 걸, 부끄럽지만 최근에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만 연간 6.7만 톤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고, 수거된 수중 쓰레기 중 90% 이상이 유실 어구라는 수치를 접했을 때는 꽤 오래 멍했습니다.유령 어업, 항구 풍경 뒤에 숨겨진 민낯제가 좋아하는 남해 몽돌해변에 다녀올 때면 늘 항구 쪽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고깃배들이 줄지어 있고, 햇볕 아래 생선이 늘어져 말려지고, 구석엔 그물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는 그 모습이 왠지 정겨웠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그물 더미를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고스트 피싱(Gh..
올봄 제주 삼호해수욕장 갯바위 틈에서 톳을 발견했을 때, 저는 그게 당연한 봄 풍경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알게 됐습니다. 그 톳이 사실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는 것을. 마라도 해녀들은 5년 전부터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10년을 연구해온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표정을 잃었다고 합니다. 제주 바다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갯바위에서 본 톳 한 줌, 사실은 경고였다제주도를 봄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고, 섭지코지에서 커피를 마셨고, 다음 날 숙소 근처 삼호해수욕장을 걸었습니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바위 구석에서 오동통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톳이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자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은 꽤 묘한 감..
우리나라 꿀 생산량의 70% 이상이 아카시나무와 밤나무 단 두 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좀 불안해졌습니다. 두 종류의 나무가 사라지면 국내 양봉 산업이 그대로 무너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자생 식물이 있다는 걸, 저는 정전이 난 어느 여름 밤에 호롱불 얘기를 떠올리다가 처음 알게 됐습니다.밀원식물로서의 쉬나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밀원(蜜源)이라는 단어, 처음 들으면 낯설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꿀의 근원, 즉 꿀벌이 화밀(花蜜)을 수집하러 찾아오는 식물을 뜻합니다. 여기서 화밀이란 꽃에서 분비되는 당분이 풍부한 액체로, 꿀벌이 이걸 모아 가공하면 비로소 우리가 먹는 꿀이 됩니다. 출퇴근길에 봄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나..
아침마다 커피숍 앞에서 일회용 컵을 받아 들면서도 "이 정도야 뭐"라고 넘겼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 동안 발생한 쓰레기를 직접 모아봤더니, 생각보다 선뜻 마주하기 불편한 양이 쌓였습니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가 그저 환경 캠페인 문구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실험해보고 나서는 그 말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 달을 모으면, 도대체 이 양이 얼마일까?하루 1kg, 숫자로 실감한 폐기물의 무게환경부가 2019년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이 하루 동안 배출하는 생활 폐기물(生活廢棄物)의 양은 약 0.92kg입니다. 여기서 생활 폐기물이란 가정이나 일상적인 활동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전반을 뜻하며, 산업 폐기물과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A4 용지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