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쉬나무 (밀원식물, 호롱불 기름, 꿀벌 소멸)

발그레돌 2026. 7. 29. 12:39

목차


      우리나라 꿀 생산량의 70% 이상이 아카시나무와 밤나무 단 두 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좀 불안해졌습니다. 두 종류의 나무가 사라지면 국내 양봉 산업이 그대로 무너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자생 식물이 있다는 걸, 저는 정전이 난 어느 여름 밤에 호롱불 얘기를 떠올리다가 처음 알게 됐습니다.



    밀원식물로서의 쉬나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습니다

    밀원(蜜源)이라는 단어, 처음 들으면 낯설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꿀의 근원, 즉 꿀벌이 화밀(花蜜)을 수집하러 찾아오는 식물을 뜻합니다. 여기서 화밀이란 꽃에서 분비되는 당분이 풍부한 액체로, 꿀벌이 이걸 모아 가공하면 비로소 우리가 먹는 꿀이 됩니다. 출퇴근길에 봄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나곤 했는데, 제가 그 나무 주변을 지날 때마다 꿀벌들이 잔뜩 모여 있겠구나 싶어 괜히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밀원식물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사실 그 나무가 바로 대표적인 밀원수종이었던 거죠.

    좋은 밀원수종(蜜源樹種)이 되려면 단순히 꿀이 많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개화 시기가 일정해야 하고, 꿀의 품질도 높아야 하며, 관리가 쉽고 보기에도 좋아야 합니다. 이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자생식물이 사실 많지 않은데, 쉬나무는 그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입니다. 영문 이름이 아예 비비트리(Bee-bee tree)일 만큼, 국외에서도 꿀 생산량이 뛰어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쉬나무는 7~8월에 꽃이 핍니다. 수꽃은 담황색, 암꽃은 백록색이고 수꽃이 먼저 피고 나서 암꽃이 뒤따릅니다. 암수가 서로 다른 나무인 자웅이주(雌雄異株) 식물인데, 간혹 한 나무에서 수꽃과 암꽃이 함께 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한성·내공해성·내충성이 모두 강해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하고, 꽃이 무성하게 피는 데다 수형까지 단정해서 조경수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도 권역별 밀원 단지 조성을 통해 연중 채밀이 가능한 고정식 양봉 모델을 추진하고 있는데(출처: 국립산림과학원), 그 핵심 수종으로 쉬나무가 꾸준히 거론됩니다.

    • 개화기: 7~8월, 아카시나무 꿀이 끊기는 여름 공백기를 채워줌
    • 내한성·내공해성·내충성이 강해 전국 어디서나 재배 가능
    • 자웅이주 식물로 수꽃 먼저 개화 후 암꽃 개화
    • 조경수로도 활용 가능한 단정한 수형
    • 영문명 Bee-bee tree — 국외에서도 밀원수종으로 공인
    요약: 쉬나무는 여름 밀원 공백기를 채우고 전국 재배가 가능한, 조건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자생 밀원수종입니다.

     

    호롱불 기름에서 불포화지방산까지, 쉬나무 종자의 재발견

    번개가 유난히 심했던 어느 여름 밤, 아파트 한 동 전체의 전기가 한꺼번에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당황하면서도 평소 잡 냄새 잡으려고 사뒀던 향초를 꺼내 불을 밝혔습니다. 에어컨도 꺼진 더운 방 안에서 아이들이 향초 불빛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옛 어르신들이 호롱불 하나로 밤을 보냈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더군요. 실제로 호롱불을 써본 적은 없지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 기억이 쉬나무와 연결된 건 나중의 일입니다. 전기도 석유도 없던 시절, 선비들에게 쉬나무 종자 기름은 정말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불꽃이 맑고 그을음이 거의 없어 공부방 호롱불로 쓰기에 최적이었다고 합니다. 뒷산에 쉬나무를 심은 이유가 바로 이 기름 때문이었고, 경상도 지방에서는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아 쉬나무를 아예 '소득나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사를 갈 때 쉬나무 종자를 챙겨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그 시절 이 나무가 얼마나 생활에 밀착돼 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놀라운 건 현대 연구 결과입니다. 쉬나무 종자 기름에는 불포화지방산(Unsaturated Fatty Acid)이 83% 이상 함유되어 있습니다. 불포화지방산이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혈관 건강에 이롭다고 알려진 지방의 한 종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올레산 21.4%, 리놀레산 40%, 리놀렌산 22%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리브유 못지않은 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쉬나무 종자 추출물에는 간에서의 당 대사를 조절하는 효소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 대사(glucose metabolism)란 우리 몸이 혈당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련의 생화학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고혈당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길 수 있는데, 쉬나무 추출물이 이를 억제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과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천연물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제가 직접 임상 결과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선조들이 귀하게 여기던 나무에 이런 성분이 있다는 사실은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요약: 쉬나무 종자는 호롱불 연료에서 출발해 불포화지방산 83% 이상, 당뇨·지방간 억제 가능성까지 확인된 자원입니다.

    [한국의 전통 호롱불]

    자주 묻는 질문

    Q. 쉬나무 꿀은 아카시아 꿀과 어떻게 다른가요?

    A. 아카시아 꿀이 봄철인 5월에 집중되는 반면, 쉬나무 꿀은 7~8월 여름에 생산됩니다. 양봉 농가 입장에서 아카시아 꿀이 끝난 뒤 밀원이 부족해지는 여름 공백기를 쉬나무가 채워줄 수 있어, 연중 안정적인 꿀 생산을 위한 보완 수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Q. 쉬나무는 어디서 구해서 심을 수 있나요?

    A. 내한성과 내공해성이 강해 전국 어느 기후에서나 재배가 가능합니다. 산림 관련 묘목 업체나 지역 산림조합을 통해 구할 수 있으며, 국립산림과학원에서도 밀원 단지 조성과 관련된 식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Q. 꿀벌이 줄어드는 게 밀원식물이랑 직접 관련이 있나요?

    A. 꿀벌 감소의 원인은 질병, 천적, 먹이 부족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 중 밀원식물 감소는 먹이 부족으로 이어져 개체수 전반에 영향을 줍니다. 질병 관리는 양봉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밀원식물을 심고 유지하는 일은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실천 방법입니다.

     

    Q. 쉬나무 종자 기름을 식용으로 먹을 수 있나요?

    A. 종자 기름에 불포화지방산이 83% 이상 함유되어 있고, 올레산·리놀레산·리놀렌산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주로 당뇨·지방간 관련 천연물 소재 연구 단계에 있으므로, 식용 제품으로 유통되기까지는 추가적인 검증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정전이 난 날 향초 하나로 버텼던 그 밤이 없었다면, 저는 쉬나무라는 나무를 이렇게 들여다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옛 어르신들이 호롱불을 밝히기 위해 뒷산에 심었던 나무가, 꿀벌의 먹이가 되고 불포화지방산을 제공하고 당뇨 치료제 가능성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은 제 예상을 훨씬 벗어났습니다.

    꿀벌 소멸은 양봉업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밀원수종이 줄면 꿀벌의 먹이가 줄고, 꿀벌이 줄면 작물 수분(受粉)이 줄고, 그 영향은 결국 우리 밥상까지 옵니다. 질병 관리는 전문가의 몫이더라도, 쉬나무 같은 밀원식물에 관심을 갖고 심고 보전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제 출퇴근길 아카시아 나무를 지나칠 때처럼, 쉬나무도 그냥 무심히 넘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XQAWbYSux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