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친구가 동남아 프리다이빙 여행에서 돌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고요함이 너무 좋아."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되려 더 커졌습니다. 인간이 맨몸으로 닿을 수 있는 깊이도 그렇게 낯선데, 햇빛조차 닿지 않는 수천 미터 심해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지금 그 심해를 두고 여러 나라가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심해 바닥에 깔린 '검은 감자', 망간 단괴
하와이 동남쪽,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Clarion-Clipperton Zone)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수심 약 4,000m의 해저에 빛을 비추면 검고 울퉁불퉁한 암석 덩어리들이 바닥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크기는 지름 5~10cm 정도로 꼭 감자 같이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망간 단괴(polymetallic nodule)입니다. 여기서 망간 단괴란 구리, 코발트, 니켈, 망간 등의 금속 성분이 수백만 년에 걸쳐 해저 퇴적물 위에 층층이 쌓이며 굳어진 광물 덩어리를 말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그냥 돌멩이 같은데, 구성 성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처럼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부품에 반드시 필요한 금속들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 하나만 따져도 망간 75억 톤, 니켈 3.4억 톤, 코발트 7,800만 톤, 구리 2억 7,500만 톤이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규모인지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 자료와 비교해 보면 실감이 납니다(출처: USGS 국가광물정보센터). 전 세계 육상에 매장된 코발트의 9배, 망간의 5배, 니켈의 3배에 달하는 양입니다. 구리도 전 세계 확인 육상 매장량의 18분의 1에 해당하고, 이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은 심해 수천 곳 중 한 곳에 불과합니다. 바다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 망간: 육상 매장량의 약 5배
- 코발트: 육상 매장량의 약 9배
- 니켈: 육상 매장량의 약 3배
- 구리: 전 세계 확인 육상 매장량의 약 1/18
국제해저기구, 규칙 없이는 한 삽도 못 뜬다
자원이 그렇게 많다면 지금 당장 캐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자원이라면 해당 국가가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전 세계 최초로 상업적 심해 채굴을 자국 EEZ 안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심해의 보물창고 대부분이 어느 나라의 EEZ도 아닌 공해(公海) 바닥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 구역에서 채굴을 하려면 국제해저기구(ISA, 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ISA란 1994년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설립된 UN 산하 기관으로, 공해 해저의 광물 자원 관리를 전담하는 국제 기구입니다(출처: 국제해저기구(ISA) 공식 홈페이지).
ISA는 199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상업적 채굴을 단 한 번도 승인한 적이 없습니다. 탐사 계약 31건만 허가한 상태로, 어디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는 허용했지만 실제로 캐내 파는 것은 막아온 셈입니다. 지금 ISA는 상업 채굴을 위한 규정을 마련 중이고, 빠르면 이르면 내년부터 상업 채굴이 개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문제는 이 규정을 둘러싸고 회원국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극명하게 갈려 아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논의에서 비교적 찬성에 가까운 입장을 취해온 나라 중 하나입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 입장에서는 이른 개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 이해가 가면서도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습니다.
암흑 산소, 채굴을 막는 예상치 못한 증거
심해 채굴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점에,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논문 한 편이 실렸습니다. 영국·독일·미국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이 논문의 제목은 '심해저 암흑 산소 생산의 증거'입니다. 결론이 꽤 놀라웠습니다.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에 깔린 망간 단괴가 산소를 스스로 생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상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암흑 산소(dark oxygen)란 태양빛이 전혀 닿지 않는 심해에서 광합성 없이 만들어지는 산소를 뜻합니다. 지금까지 산소는 해조류나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서만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망간 단괴 표면에서 최대 0.95V의 전압이 발생하고, 이 전기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전기분해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냥 돌덩이처럼 보이는 광물 덩어리가 바닷속에서 조용히 전기를 만들고 산소를 공급하는 촉매 역할을 해온 셈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바다 생태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생명 기원 학설을 바꿀 수 있는 발견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만약 채굴 장비가 이 망간 단괴를 긁어내 버린다면 심해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쌓인 것을 한 번 파헤치면 복원이 가능할지조차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그 전에 대안을 먼저
육지에서 자원을 캐내는 것도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더 깊은 지하로, 더 외딴 오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고, 그럴수록 비용은 늘고 열대우림 파괴 같은 환경 문제도 같이 커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간이 지상을 다 망가뜨리고 이제 바닷속까지 손을 뻗으려 한다는 씁쓸함입니다. 개발 논리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해 채굴 찬성론자들은 태평양 심해에는 열대우림도 없고 지역 주민도 없으니 오히려 육상 채굴보다 환경 부담이 적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밭 갈듯이 해저를 훑는 장비로 망간 단괴를 걷어 올리면, 이론상으로는 낮은 비용으로 대량의 금속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반면 반대론자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심해는 인류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암흑 산소 연구가 보여주듯, 우리가 그냥 돌덩이라고 봤던 것이 사실은 생태계의 핵심 부품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검증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론자들의 논리에 더 마음이 기웁니다. 동시에, 이 논쟁이 의미 있게 되려면 희귀 광물에 대한 대체 기술 연구와 재활용 확대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캐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꼭 이만큼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가 맞지 않을까요. 제가 직접 자원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이 질문만큼은 계속 던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망간 단괴는 왜 전기차 배터리에 중요한가요?
A. 망간 단괴에는 코발트, 니켈, 구리가 함께 들어 있는데, 이 세 가지 금속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재 핵심 소재입니다. 특히 코발트와 니켈은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어서,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육상 매장량만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심해 채굴 논의를 촉발시킨 핵심 이유 중 하나입니다.
Q. 국제해저기구(ISA)가 상업 채굴을 허가하면 바로 시작될 수 있나요?
A. 규정이 마련되면 법적으로는 채굴 신청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실제 상업 채굴까지는 기술 검증, 환경 영향 평가, 장비 개발 등 추가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ISA가 현재 규정을 마련 중이며, 이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첫 상업 채굴 허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있지만, 회원국 간 이견이 커서 일정은 유동적입니다.
Q. 암흑 산소가 생명 기원과 관련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지금까지 산소는 반드시 광합성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태양빛이 없는 심해에서 전기분해로 산소가 생성된다는 발견은, 생명이 광합성 없이도 산소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는 지구 초기 생명 탄생 과정이나 태양빛이 없는 다른 행성의 생명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Q. 한국은 심해 채굴에 어떤 입장인가요?
A. 한국은 국내 광물 자원이 부족한 나라인 만큼, ISA 회원국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심해 자원 탐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편입니다. 탐사 계약을 확보하고 기술 개발에 투자해온 배경이 있으며, 상업 채굴 논의에서도 개발 쪽에 가까운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국익과 환경 보전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지는 앞으로 계속 논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결론
친구가 바닷속에서 느꼈던 그 고요함은, 어쩌면 수백만 년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세계의 고요함이었을지 모릅니다. 망간 단괴가 암흑 속에서 산소를 만들고,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심해 생태계를 유지해온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 많습니다.
자원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속도보다 신중함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희귀 광물의 재활용 기술을 높이고, 배터리 소재 대체재를 개발하는 방향에 자원을 먼저 쏟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심해 채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