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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런던에서 에어컨 없는 호텔 방에 짐을 풀면서,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분명 여름인데 바닥엔 낙엽이 굴러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단순히 영국의 날씨 특성이 아니었습니다. 지구의 심장이라 불리는 해류, AMOC(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은 지금 이 해류의 붕괴 가능성을 두고 심각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열염순환 메커니즘]

런던이 서울보다 따뜻한 진짜 이유 — 해류 순환의 정체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을수록 추울 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런던에 직접 가보니 이 상식이 꽤 흔들렸습니다. 런던은 북위 51.5도로, 북위 37.5도인 서울보다 한참 위에 있습니다. 심지어 백두산보다도 북쪽이죠. 그런데 런던의 겨울은 서울보다 온화합니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 뒤에는 AMOC가 있습니다.

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우리말로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이란 적도의 열을 북쪽으로 실어 나르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바닷물 컨베이어 벨트를 말합니다. 단순히 바다 표면을 빙글빙글 도는 보통의 해류가 아니라, 수심 3km 심해까지 바다를 통째로 위아래로 뒤집으며 순환하는 입체적인 흐름입니다.

이 벨트를 움직이는 동력은 바람이 아니라 바닷물 자체의 무게 차이입니다. 열염순환(thermohaline circulation)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열염순환이란 온도(열)와 염분(염)이 바닷물의 밀도를 결정하고, 그 밀도 차이가 해류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적도 근처에서 뜨겁고 짠 바닷물이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그린란드 앞바다에서 차갑게 식으면서 무거워져 심해로 가라앉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러 또 다른 따뜻한 물이 올라오는 식으로 순환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실어 나르는 열 에너지는 약 1페타와트(PW)에 달합니다. 대형 원자력 발전소 100만 기가 풀가동하는 출력과 맞먹는 수치입니다. 유럽인들은 수천 년 동안 이 공짜 난방 시스템 덕분에 위도 대비 온화한 기후를 누려온 셈입니다. 제가 런던 호텔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거대한 벨트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해류를 멈추게 만드는 구조

일반적으로 지구온난화는 기온이 오른다는 단순한 이미지로 여기기 쉽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봄·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도, 처음엔 그냥 날씨가 달라졌구나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AMOC가 멈추는 구조를 알고 나서는 그게 결코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AMOC가 작동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북쪽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충분히 차갑게 식어야 합니다. 둘째, 그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높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는 이 두 조건을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북극권의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고 있어, 올라온 바닷물이 예전만큼 열을 버리지 못합니다. 덜 차갑고, 덜 무거워지니 가라앉는 힘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린란드 빙상(Greenland Ice Sheet) 문제가 겹칩니다. 그린란드 빙상이란 그린란드 섬 전체를 덮고 있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전부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을 7m 올릴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 빙상이 지난 20년간 매년 평균 약 2,700억 톤씩, 심한 해에는 5,000억 톤씩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녹아내린 물은 소금기 없는 민물 그대로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바닷물을 희석시킵니다.

싱거워진 바닷물은 가라앉지 못하고, 그러면 적도에서 짠물 공급이 줄어들고, 더 싱거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이 악순환이 일정 선을 넘는 순간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합니다. 여기서 티핑 포인트란 한번 넘으면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뜻합니다. 과학자들이 AMOC 앞에서 유독 긴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실제 관측 데이터도 심상치 않습니다. NASA는 지구 표면 온도 변화를 100년간 추적해왔는데, 전 세계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그린란드 남쪽 북대서양 일부만 유독 차갑게 식는 현상이 포착되고 있습니다(출처: NASA Climate). 과학자들은 이 구역을 콜드 블롭(Cold Blob)이라 부르며, AMOC 약화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로 봅니다. 20세기 중반과 비교해 AMOC는 이미 약 15% 느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AMOC가 멈추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

솔직히 빙하가 녹고 해류가 느려진다는 말이 우리 일상과 연결되기까지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런던에서 이상하게 더운 여름을 경험하면서도 처음엔 단순한 이상기후 정도로만 느꼈습니다. 그런데 AMOC 붕괴 이후를 시뮬레이션한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 파장이 훨씬 가까운 문제라는 걸 알게 됩니다.

2024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연구팀은 슈퍼컴퓨터로 AMOC 붕괴 후 지구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유럽은 한 세기 안에 평균 기온이 10~30도 떨어지고, 일부 지역은 단 10년 안에 1.5도가 급락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런던에 영하 20도, 오슬로는 영하 48도, 스칸디나비아 일부는 영하 50도까지 가능하다는 수치입니다. 연구를 이끈 판 베스턴 박사는 "영하 40도 밑으로 내려가면 그 지역의 모든 것이 작동을 멈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열이 북쪽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적도와 남반구에 열이 그대로 쌓입니다. 그 결과 지구의 비구름 벨트인 열대 수렴대(ITCZ)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수십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아시아 몬순과 열대 우기의 패턴이 뒤틀립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우기와 건기가 아예 뒤바뀌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또 다른 생태계 붕괴라는 새로운 티핑 포인트가 연쇄적으로 촉발됩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식량 문제가 특히 걱정됩니다. 한국은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입니다. 유럽 농업이 무너지고 아시아·아프리카의 우기가 뒤틀리면, 전 세계 곡물 공급망은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충격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더 크게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이 임계점에 도달할까요? 2023년 코펜하겐 대학 연구팀은 2037년에서 2099년 사이 95% 확률로 티핑 포인트가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2025년 위트레흐트 대학 연구팀은 중앙값을 2055년으로, 임계 기온을 2.5도 상승으로 봤습니다. 현재 지구 기온은 이미 1.3~1.4도 올랐습니다(출처: IPCC). 안전 마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입니다. 이 분야를 35년간 연구해온 람스토르프 박사는 "비관적인 모델들이 불행히도 관측 데이터와 더 잘 맞는 현실적인 모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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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재앙이 며칠 만에 찾아옵니다. 그러니 다들 뛰어서 도망칩니다. 하지만 현실의 재앙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다가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시하기 쉽습니다. 제가 런던에서 에어컨 없이 더운 여름밤을 보내면서 느꼈던 그 어색함, 한국에서 봄이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 이것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AMOC 붕괴가 2055년이든 2099년이든, 어느 시나리오도 안심할 수 있는 결말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기후변화를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닌 내 삶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탄소 감축 노력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지구가 아프다는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