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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태풍이 조용해진 걸 처음엔 그냥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논을 바라보며 태풍이 훑고 간 자리에 쓰러진 벼를 보던 기억이 있는 사람으로서, 태풍이 약해졌다는 건 그저 반가운 소식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니 그게 전혀 다행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올여름, 태평양 바다가 심상치 않게 달아오르고 있고 그 열기가 우리 머리 위에서 어떤 식으로 터질지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엘니뇨의 과정]

엘니뇨와 지구온난화, 두 변수가 겹쳤을 때

제가 어렸을 적, 태풍은 해마다 한두 번씩은 반드시 오는 존재였습니다. 논에 벼를 심어놓으면 어김없이 강풍이 지나가며 벼 포기를 쓰러뜨렸고, 그게 싫으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계절의 리듬이었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리듬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태풍이 한반도를 정면으로 치고 지나가는 일이 줄었고, 왔다 싶으면 어느새 방향을 틀어 일본이나 중국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처음엔 운이 좋아졌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태평양 적도 인근 바다의 수온이 평년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엘니뇨(El Niño)라고 합니다. 여기서 엘니뇨란 적도 태평양 중앙부터 동쪽 해역의 표층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이 바다 하나가 달아오르면 그 위를 흐르는 대기 전체의 흐름이 바뀌고 비구름이 모이는 위치, 즉 강수대까지 통째로 이동하게 됩니다. 지구 날씨의 판을 다시 짜는 현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엘니뇨 자체보다 거기에 지구온난화가 더해진다는 점입니다. 태풍은 따뜻한 바다를 연료 삼아 성장합니다. 바닷물이 증발하며 수증기가 올라오고, 그 수증기가 구름이 될 때 방출하는 열이 태풍을 돌리는 에너지가 됩니다. 예전에는 태풍이 북상하는 길목의 바다가 차가워 수증기 공급이 끊기며 힘이 약해졌는데, 온난화로 그 중간 바다까지 따뜻해진 지금은 태풍이 한반도 가까이 올 때까지도 연료를 충전하며 올라옵니다.

여기서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론 관계(Clausius-Clapeyron relation)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이는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약 7%씩 늘어난다는 물리 법칙입니다. 쉽게 말해, 바다가 뜨거워질수록 같은 크기의 비구름이라도 품고 있는 물의 양 자체가 훨씬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태풍이 직접 상륙하지 않아도, 남쪽 따뜻한 바다에서 끌어올린 수증기를 우리 쪽으로 밀어 올리면 정작 폭탄 같은 폭우는 태풍의 중심이 아닌 우리 머리 위에 쏟아질 수 있습니다.

  • 엘니뇨: 적도 태평양 수온 상승 → 전 지구 대기 흐름·강수대 이동
  • 지구온난화: 북상 길목 바다까지 가열 → 태풍이 세력을 유지한 채 접근
  •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론 관계: 기온 1°C 상승 시 수증기 보유량 약 7% 증가 → 같은 비구름도 더 많은 비를 쏟아냄
  • 2022년 힌남노,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침수 — 피해를 키운 건 바람이 아닌 집중호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태풍이 조용하다고 해서 여름이 순탄한 게 아니었습니다. 2023년에는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이 단 한 차례도 없었지만, 곳곳에서 기습 집중호우로 도로가 잠기고 하천이 넘쳤습니다. 태풍이라는 '주인공'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오히려 더 예측하기 힘든 비가 쏟아진 셈입니다. 강한 고기압이 태풍의 경로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밀어내는 동안, 그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온 뜨거운 수증기가 한반도 위에서 집중호우로 폭발했던 것입니다.

요약: 엘니뇨와 지구온난화가 맞물리면 태풍의 세력이 약해지지 않고 유지된 채 접근하고, 직접 상륙하지 않아도 집중호우를 통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한반도 지역의 집중호우 모형]

AMOC 약화, 예측 기준 자체가 흔들린다

엘니뇨와 온난화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변수를 처음 접했을 때 "대서양 이야기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향권이 지구 전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가볍게 볼 수 없게 됐습니다.

AMOC(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즉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은 쉽게 말해 지구의 거대한 열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여기서 AMOC란 대서양에서 따뜻한 표층수를 북쪽으로 보내고, 차갑고 무거워진 물이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는 지구 규모의 해류 순환을 말합니다. 이 흐름 덕분에 유럽이 위도에 비해 따뜻하고, 지구 전체의 수온 분포와 강수 패턴이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벨트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열대 해류 연구에 따르면 AMOC는 10년에 약 1 스베드럽(Sverdrup)씩 약화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참고로 1 스베드럽이란 초당 100만 세제곱미터의 물이 흐르는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전 세계 강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입니다. 이 거대한 순환이 느려진다는 게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2025년 11월, 아이슬란드 정부는 AMOC 붕괴 위험을 국가 안보 차원의 위협으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기후 관련 사안이 아이슬란드 국가 안보 의제에 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출처: Nature, AMOC 약화 관련 연구).

AMOC가 느려지면 그 영향은 대서양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다의 큰 흐름이 바뀌면 그 위를 도는 제트 기류(Jet Stream)의 경로도 달라집니다. 여기서 제트 기류란 대기 상층부를 빠르게 흐르는 강한 편서풍으로, 이 흐름이 어떻게 구부러지느냐에 따라 장마전선의 위치와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 방향이 결정됩니다. 제트 기류의 경로가 바뀌면 비가 집중되는 지역이 달라지고, 우리가 수십 년간 날씨 예측의 기본 전제로 삼아온 기준 자체가 조금씩 이동하는 것입니다(출처: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지구의 환경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태평양에서 엘니뇨가 일어나고, 대서양에서 AMOC가 느려지고,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일들이 각각 따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한 유기체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나라 여름 하늘 위에서 합산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국소적인 원인만 들여다봐서는 답이 잘 안 나오는 것입니다.

요약: AMOC 약화는 당장 올여름의 변수라기보다 날씨 예측의 기준 자체를 장기적으로 바꾸는 더 느리고 근본적인 변화로, 엘니뇨·온난화와 함께 겹치면 기상 예측의 불확실성을 크게 키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엘니뇨가 오면 우리나라 여름은 무조건 더 덥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엘니뇨 자체는 원래 우리나라 여름과 직접적인 연관이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구온난화가 더해지면서 엘니뇨가 촉발하는 대기 흐름의 변화가 폭염과 집중호우를 번갈아 일으키는 '예측 불허의 여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게 더 무서운 지점입니다.

 

Q. 태풍이 한반도에 안 오면 그냥 다행인 거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태풍이 상륙하지 않아도 비 피해는 충분히 발생합니다. 2023년이 딱 그런 해였습니다. 태풍이 고기압에 막혀 방향을 틀면, 오히려 그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온 뜨거운 수증기가 한반도 위에서 집중호우로 쏟아집니다. 태풍이 오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바다가 얼마나 달궈져 있느냐가 더 중요한 지표입니다.

 

Q. AMOC가 약해지면 우리나라 날씨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오나요?

A.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는 날씨를 예측하는 기준 자체를 서서히 바꿔놓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AMOC가 느려지면 대서양 상공의 제트 기류 경로가 달라지고, 이것이 장마전선의 위치나 북태평양 고기압의 움직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요컨대 우리가 수십 년간 경험으로 쌓아온 "이쯤에서 비가 오겠지"라는 감각이 조금씩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Q.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요?

A. 미약하지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은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온실가스 배출입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온난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엘니뇨의 파급력을 키우는 배경 자체를 완화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름철 기상 정보를 꾸준히 확인하며 재난에 대비하는 태도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동입니다.

 

결론

제가 시골에서 보낸 여름들을 떠올리면, 태풍은 두렵지만 예측 가능한 존재였습니다. 오는 방향도, 대략의 시기도 알 수 있었고, 지나가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여름은 그 예측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엘니뇨, 지구온난화, AMOC 약화라는 세 변수가 서로 다른 속도로 동시에 작동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계절의 리듬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여름 가장 경계해야 할 건 강풍이 아니라 비라고 생각합니다. 태풍이 오든 오지 않든, 뜨거워진 바다가 대기로 올려 보낸 수증기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터집니다. 그 위치와 시점이 해마다 더 불규칙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기상 특보를 예전보다 더 자주, 더 꼼꼼히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작은 실천들도 함께 이어가셨으면 합니다. 원인을 아는 것과 그것을 줄이려는 행동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RRzeDXLW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