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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이가 살짝 휘어 있으면 손이 안 갔습니다. 딸기도 작고 색이 고르지 않으면 괜히 덜 신선해 보이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지나쳤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물을 키우는 데 든 물, 비료, 사람의 손길은 예쁜 것이나 못생긴 것이나 똑같이 들었을 텐데, 왜 나는 모양 하나로 이 음식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을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못난이 채소]



규격 기준이 만들어낸 '탈락의 기준'

농산물 유통 현장에는 엄격한 규격 기준이 존재합니다. 유럽에서는 오이 하나에도 길이, 지름, 색깔, 탄력까지 수치화된 기준을 적용해왔습니다. 이 기준은 2009년 공식적으로는 폐지됐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지금도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과 산지 유통센터를 보면 상황이 더 와닿습니다. 수확한 사과는 먼저 무게로 분류되고, 그다음 눈으로 다시 한번 걸러집니다. 색깔이 80% 이상 고르게 들어야 하고, 표면에 작은 흠집 하나만 있어도 정품에서 제외됩니다. 맛이나 당도와는 전혀 무관한 기준이죠. 이 과정에서 탈락한 사과들은 주스나 가공품으로 전환되거나, 운이 나쁘면 폐기됩니다.

여기서 푸드 웨이스트(Food Waste)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푸드 웨이스트란 먹을 수 있는 상태임에도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식품 전반을 의미하는데, 단순히 먹다 남긴 음식뿐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탈락한 농산물까지 포함됩니다. 출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약 3분의 1이 이런 방식으로 손실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꽤 놀랐습니다. 추상적인 숫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마트에서 제가 외면했던 휜 오이 한 개, 작은 딸기 한 팩이 바로 그 통계의 일부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더 넓게 보면 이건 단순한 낭비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되지 않는 농산물이 매립되거나 방치될 때 발생하는 메탄(CH₄) 가스는 온실가스의 일종으로,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기여도가 훨씬 높습니다. 메탄 가스란 유기물이 산소 없이 분해될 때 발생하는 기체로,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겉모습 때문에 탈락한 농산물이 결국 우리 지구가 짊어져야 할 환경 부담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냥 땅에 묻으면 그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처음엔 솔직히 그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자연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농산물을 만들어내기까지 투입된 물·비료·노동력이 그대로 낭비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무게·색깔·표면 상태 등 외형 기준이 농산물 등급을 결정
  • 맛·당도와 무관하게 탈락한 작물은 가공 처리되거나 폐기
  • 버려지는 유기물에서 발생하는 메탄 가스는 기후변화를 가속
  • FAO 기준 전 세계 식량의 약 3분의 1이 소비 전 손실
요약: 외형 규격 기준이 맛과 무관한 농산물을 대량 탈락시키고, 그 폐기 과정이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공유 냉장고와 자투리 파티,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서울 아현동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진행됐습니다. 동네 작은 식당에 주민 공용 냉장고 하나를 놓고, 요리하다 남은 식재료를 자유롭게 넣고 꺼내 쓰는 방식을 운영한 겁니다. 이른바 공유 냉장고(Community Fridge)입니다. 공유 냉장고란 특정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지역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식재료 공유 플랫폼으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확산돼 있는 개념입니다.

처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남이 쓰던 걸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인식이 컸죠. 저도 솔직히 그 반응이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위생이나 신선도에 대한 걱정이 본능적으로 드는 건 당연한 반응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시장 보다가 양이 많다 싶을 때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배추 반 포기, 두부 한 모 같은 식재료들이 하나둘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실용적인 접근입니다. 딸기를 한 팩 사면 반드시 남는 게 나오고, 배추도 한 포기를 다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1인 가구라면 더욱 그렇죠. 그 남은 것들을 버리지 않고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구조, 단순하지만 꽤 합리적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이른바 자투리 요리입니다. 셰프 신효섭 씨는 딸기 농장에서 구한 못난이 딸기, 도매시장에서 나온 B급 당근, 공유 냉장고에서 얻은 파프리카 등을 모아 실제 코스 요리를 완성해 냈습니다. 고등어 파스타, 딸기 티라미수, 사과 조림 등 외형만 보면 상품가치가 없던 재료들이 테이블 위에서 전혀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됐죠.

업사이클링 푸드(Upcycled Food)라는 개념이 여기서 적용됩니다. 업사이클링 푸드란 규격에서 탈락하거나 잉여로 남은 식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음식이나 제품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출처: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 평균 1만 톤 이상 발생하며, 전체 생활폐기물의 약 60%를 차지합니다. 이 수치를 보면 "알아서 썩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안이한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 모인 주민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게 버려질 뻔한 재료라고?"라는 놀라움, 그리고 "앞으로는 좀 다르게 봐야겠다"는 다짐.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맛을 결정하는 건 모양이 아니라 손질과 조리법이라는 걸,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요약: 공유 냉장고와 자투리 요리는 실생활에서 실현 가능한 방식이며, 업사이클링 푸드 개념은 버려질 뻔한 식재료를 새로운 가치로 되살리는 실질적 해법입니다.

[못난이 채소로 만든 음식]

자주 묻는 질문

Q. 못난이 농산물이 맛이나 영양 면에서 정말 차이가 없나요?

A. 대체로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사과 농가 측에서도 "당도와 맛은 외형과 무관하다"고 직접 언급할 정도입니다. 물론 표면에 상처가 있다면 신선도 유지 기간이 짧아질 수 있으므로, 구매 후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직접 써봤는데, 모양이 제각각인 딸기로 만든 잼이 예쁜 딸기보다 오히려 더 풍미가 진했습니다.

 

Q. 공유 냉장고를 위생적으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식재료별로 밀폐 포장해서 보관하고, 유통기한이나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라벨에 기록해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현동 사례에서도 식재료 일지를 별도로 운영했는데, 이 간단한 기록 하나가 신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먹다 남긴 음식이 아닌 '쓰다 남긴 식재료'라는 인식 전환이 핵심입니다.

 

Q. 못난이 농산물을 어디서 살 수 있나요?

A. 재래시장이나 도매시장 인근 소매상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에서도 '못난이 박스' 형태로 판매하는 농가나 플랫폼이 늘고 있습니다. 저도 한 번 주문해봤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했고, 가격도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Q. 버려지는 농산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큰가요?

A. 단순히 음식이 썩는 문제로만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보는 시각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농산물 하나를 생산하기까지 투입된 물, 토지, 에너지, 노동까지 함께 버려진다는 점에서 실제 환경 부담은 상당합니다. 여기에 매립 시 발생하는 메탄 가스까지 더해지면 기후 영향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개인 차원의 소비 선택이 실제로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

저는 이 주제를 들여다보기 전까지 못난이 농산물 문제를 그저 농가의 안타까운 사정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규격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탈락한 작물이 어떤 경로를 거치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공중으로 사라지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소비 습관이 결국 농부의 수고를 반쪽으로 만들고, 쓸 만한 식재료를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그 쓰레기가 다시 환경 부담이 되는 구조를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소비자의 선택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음에 장을 볼 때 한 번쯤 작고 휜 오이에 손을 내밀어보시길 권합니다. 직접 써보시면 저처럼 생각이 달라지실 수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mSZ35tPO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