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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텃밭을 만들려고 흙을 파다가 수십 년은 됐을 법한 과자 봉지가 멀쩡하게 나왔습니다. 그 순간 "플라스틱은 잘 안 썩는다"는 말이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내 연구진이 PET 플라스틱을 효소 하나로 빠르게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단순한 실험실 성과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 속에서 나온 과자 봉지, 그리고 CUBE-MCB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수백 년이 지나야 분해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텃밭 자리를 만들려고 삽을 꽂았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온 건 요즘 마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구형 과자 봉지였습니다. 아이들한테 이걸 보여주면서 "이게 아직도 안 썩어서 흙 속에 있는 거야"라고 말해줬는데, 저도 말하면서 꽤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는 그중에서도 우리 일상과 가장 가까운 플라스틱입니다. 여기서 PET란 에틸렌 글리콜과 테레프탈산이 반복 결합한 고분자 구조로, 생수병·테이크아웃 컵·자동차 안전벨트 등에 광범위하게 쓰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PET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국내 연구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만 개의 PET 분해 효소 데이터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후보 230여 개를 추린 뒤 실험실 검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CUBE-PETase'를 발굴했습니다. 효소(Enzyme)란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특정 화학 반응을 빠르게 일으키는 생체 촉매를 말합니다. 이후 연구진은 이 효소의 아미노산 12개를 다른 아미노산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열적 안정성과 분해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려 최종 버전인 'CUBE-MCB'를 완성했습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하나만 바뀌어도 입체 구조가 달라지고, 구조가 달라지면 성능이 완전히 바뀝니다. 280개 아미노산 중 12개를 정밀하게 교체했다는 건 설계도를 처음부터 다시 그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CUBE-MCB는 0.5g의 효소만으로 1kg의 PET를 1시간 안에 45%, 8시간 만에 90% 이상 분해해 세계 최고 성능을 입증했습니다(출처: YTN 사이언스).
- 발굴 효소: 수만 개 데이터 → 알고리즘 선별 → 230개 후보 → 최종 CUBE-PETase
- 개량 방식: 아미노산 12개 치환 → 열적 안정성·분해 능력 동시 향상
- 최종 성능: 효소 0.5g으로 PET 1kg을 8시간 내 90% 이상 분해
기질 특이성이 만드는 진짜 재활용, 그리고 남은 질문
플라스틱 재활용이 어렵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제가 직접 분리수거를 하면서 늘 의아했던 건 따로 모아서 버려도 실제로 얼마나 깨끗하게 재처리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열을 가해 녹이는 기계적 재활용 방식은 불순물이 섞이면 재생 소재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CUBE-MCB의 기질 특이성(Substrate Specificity)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기질 특이성이란 효소가 자신이 분해하도록 설계된 물질만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반응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PET 분해 효소는 PET만 분해하고 그 외 물질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분해 과정에서 다른 유해 물질이 생성될 가능성이 낮고, 최종 반응물이 매우 순수한 상태로 남습니다. 이 순수한 반응물을 원료로 다시 PET를 만들면 재생 소재의 품질이 기존 방식보다 우수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출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연구진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CJ제일제당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상용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아미노산 치환 조합을 더 빠르게 찾을 수 있다면 개발 기간도 크게 단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단백질 구조 디자인 분야와 이 연구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저는 봅니다.
다만 제가 직접 이 연구를 들여다보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분해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효소가 PET를 분해하면 에틸렌 글리콜과 테레프탈산 같은 단량체가 나옵니다. 이 물질들이 자연 환경이나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시 미세플라스틱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축적되지는 않는지에 대한 장기 연구가 병행되어야 이 기술이 진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자체는 분명히 앞서 있는데, 그 뒷부분의 안전성 검증이 같은 속도로 따라와 줘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CUBE-MCB 효소는 페트병 말고 다른 플라스틱도 분해하나요?
A. 일반적으로 효소는 기질 특이성을 가지기 때문에 CUBE-MCB는 PET 플라스틱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 같은 다른 플라스틱은 효소가 분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현재로서는 PET에 한정된 기술입니다. 바꿔 말하면 PET가 효소로 분해 가능한 몇 안 되는 플라스틱 중 하나라는 점이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효소로 분해하면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해결되나요?
A. 효소 분해는 PET를 단량체 수준으로 분해하는 방식이라 기계적 파쇄처럼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세플라스틱 생성 억제에 기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분해 산물인 에틸렌 글리콜과 테레프탈산이 환경 내에서 어떻게 거동하는지에 대한 장기 안전성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Q. 이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A. 연구진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CJ제일제당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상용화가 단순한 목표가 아닌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험실 성능과 산업 규모 대량 생산 사이에는 공정 최적화, 비용, 안전성 검증 등 여러 허들이 남아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 기술이 접목된다면 개발 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자연에 원래 있는 효소랑 CUBE-MCB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자연계에 존재하는 PETase는 소량의 PET를 분해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대량 처리 능력과 고온 환경에서의 안정성이 부족합니다. CUBE-MCB는 자연 효소 CUBE-PETase를 기반으로 아미노산 12개를 인위적으로 치환해 열적 안정성과 분해 속도를 대폭 끌어올린 인공 개량 효소입니다. 자연에 없는 조합을 설계한 것이기 때문에 성능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결론
텃밭 흙 속에서 나온 과자 봉지 하나가 저한테는 꽤 오랫동안 남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플라스틱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발 밑에 있다는 걸 몸으로 확인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CUBE-MCB 같은 바이오촉매 기술은 단순한 학술 성과가 아니라 실제로 그 흙 속 봉지를 없앨 수 있는 현실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다만 저는 이 기술이 완성됐다기보다는 절반쯤 왔다고 봅니다. 분해 속도와 선택성은 세계 최고 수준임이 입증됐지만, 분해 이후 산물이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같은 속도로 뒤따라 와야 합니다. 플라스틱을 쓰는 습관을 줄이는 노력과 이런 분해 기술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다면 분해 산물의 안전성 관련 후속 연구 동향도 함께 살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