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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가 되면 그냥 더워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여름, 집 창문 너머로 강변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때는 그냥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해라고 넘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인도양 수온 2도 차이에서 시작된 연쇄 기후재난의 마지막 고리 중 하나였습니다.

수온 2도가 대륙 하나를 태웠다
바닷물 온도 2도 차이가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건 일반적인 온도계 눈금 2도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2019년 가을,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 사이에 수온 차가 관측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수준으로 벌어졌습니다. 이 현상을 인도양 다이폴(Indian Ocean Dipol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인도양 다이폴이란, 인도양의 동서 양쪽 해수면 온도가 비대칭적으로 변하면서 대기 순환 전체를 뒤흔드는 기후 현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인도양을 기준으로 한쪽은 비정상적으로 뜨겁고 반대쪽은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지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바닷물은 공기와 달리 쉽게 데워지거나 식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거대한 바다가 2도나 차이가 난다는 건, 그 안에 흡수되거나 빠져나간 열에너지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입니다. 출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증가한 열에너지의 90% 이상이 바다에 축적되고 있으며, 이 열이 대기 순환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호주였습니다. 인도양 동쪽 수온이 낮아지면서 호주 대륙으로는 수분 공급이 극단적으로 끊겼습니다. 2019년 내내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땅이 바짝 말라붙었고, 마른 번개 하나가 뉴사우스웨일스주와 퀸즐랜드주에 불씨를 당겼습니다. 처음엔 그냥 산불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륙 전체가 불쏘시개 상태였으니 멈출 이유가 없었습니다.
산불 현장에서는 파이어네이도(Firenado)라는 현상까지 출현했습니다. 파이어네이도란, 산불의 열기가 주변 공기를 급격히 가열해 상승기류를 만들고 여기에 불꽃과 재가 빨려 들어가며 수십에서 수백 미터 높이의 불 회오리가 형성되는 현상입니다. 소방차 700대, 항공기 100대, 연인원 25만 명, 미국과 뉴질랜드를 포함한 해외 소방대원 1,000명 이상을 투입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6개월 뒤인 2020년 2월, 단 하루에 350mm의 폭우가 쏟아지며 불이 꺼졌습니다. 그런데 그 폭우가 이번엔 홍수가 됐습니다. 불이 꺼지자마자 물이 덮쳤습니다. 이 화재로 불탄 면적은 약 12만 제곱킬로미터, 한국 국토 전체보다 넓은 땅이 잿더미가 됐고 피해액은 약 80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호주 전역 숲의 14%가 소실됐으며 코알라는 기존 개체수 8만 마리 중 6만 마리가 죽거나 다쳐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습니다. 야생동물 피해는 육상 동물만 30억 마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 불탄 면적: 약 12만 km² (한국 국토 면적 10만 km² 초과)
- 화재 지속 기간: 약 6개월 (2019년 8월 ~ 2020년 2월)
- 피해 추산액: 약 80조 원 이상
- 코알라 피해: 전체 개체수의 약 75% 사망 또는 부상, 멸종위기종 지정
- 야생동물 피해: 육상 동물만 30억 마리 이상 추정

재난은 혼자 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후 재난은 특정 지역의 특수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호주 산불은 '그 나라 얘기', 아프리카 홍수는 '멀리 있는 나라 얘기'로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재난들을 연결해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인도양 서쪽 수온이 올라간 쪽에서는 거대한 비구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비구름이 동아프리카로 쏟아졌고, 2019년 10월부터 소말리아·케냐·에티오피아 일대에 두 달간 전례 없는 폭우가 내렸습니다. 약 300만 명이 이재민이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축축해진 대지에서 아프리카 사막 메뚜기(Desert Locust)가 폭발적으로 번식했습니다. 사막 메뚜기란 건조한 사막 지대에 서식하다가 습도가 높아지면 대규모 군집을 이루어 하루에 150km를 날아다니며 모든 식물을 초토화하는 곤충입니다. 가뜩이나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메뚜기떼가 파괴한 농경지 면적은 축구장 10만 개 규모에 달했습니다.
그 재난의 흐름은 결국 동아시아로 향했습니다. 2020년 5월 중국 중남부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대한민국 전체 인구를 넘는 수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 장마전선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왔습니다.
제가 2020년에 휴직 중이었던 덕분에 그 여름을 집에서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창밖으로 항상 강변 풍경이 보여서 마음에 들었던 아파트였는데, 그 해 여름에는 달랐습니다. 천변이 물에 잠기더니 강 근처 건물들이 반쯤 물에 잠기는 모습까지 목격했습니다. 우리 아파트까지 물이 차오를까 봐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지대가 높았는지 다행히 직접 피해는 없었지만, 며칠 뒤 그 자리를 다시 봤을 때 전에 눈이 시원해지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해 우리나라는 관측 역사상 최장 기간인 54일 장마를 기록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비가 많이 왔던 해'가 아니라는 걸, 이 재난들의 연결고리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출처: 기상청(KMA)에서도 이 시기를 기후변화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사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0년 8월 미국에서는 열대성 저기압(Tropical Cyclone) 두 개가 동시에 상륙하는 쌍둥이 허리케인이 발생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위성 사진 한 장에 허리케인 5개가 동시에 찍히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열대성 저기압이란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인 따뜻한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저기압 시스템으로, 발생 지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으로 불립니다. 2020년 대서양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 수는 관측 역사상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이 2020년에 태풍 강도에 '초강력' 등급을 새로 만든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최근 10년간 '매우 강한 태풍'이 전체의 절반을 넘으면서 그보다 높은 단계가 필요해진 것입니다. 과학 시간에 배웠던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지구 안의 수분 총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그 수분은 반드시 다른 어딘가에서 쏟아집니다. 호주가 말라붙는 동안 아프리카가 잠겼고, 아시아가 54일 동안 비를 맞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인도양 수온 2도 차이가 왜 그렇게 큰 문제인가요?
A. 공기와 달리 바닷물은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를 품고 있어서 온도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 거대한 바다가 2도나 차이가 난다는 건 그 안에서 일어난 열에너지 이동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온 1도 차이는 기후에 미미한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대기 순환 전체를 바꿀 만큼의 에너지가 개입된 상황입니다.
Q. 호주는 원래 산불이 잦은 나라 아닌가요?
A. 맞습니다. 호주는 몇 년에 한 번씩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나라이긴 합니다. 그런데 2019~2020년 산불은 규모와 지속 기간이 전혀 달랐습니다. 6개월간 멈추지 않았고, 소실 면적은 한국 국토 전체보다 넓었으며, 전 세계에서 소방 인력을 지원받고도 인력으로는 막기 어려웠습니다. 일반적인 산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Q. 2020년 한국 54일 장마도 기후변화 때문인가요?
A.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인도양 수온 상승이 꼽힙니다. 중국 중남부에서 시작된 장마전선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일본을 지나 한반도로 이어진 흐름이었고, 기상청도 이 시기를 기후변화의 영향이 나타난 사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온이 1도 오르면 대기 중 수증기가 약 7% 증가하는데, 지구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이런 장마는 더 자주, 더 길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파이어네이도가 일반 산불보다 위험한 이유가 뭔가요?
A. 파이어네이도는 불꽃과 타는 잔해를 회오리 안에 흡수하며 수백 미터 높이까지 치솟기 때문에, 불씨를 훨씬 넓은 범위로 흩뿌립니다. 일반 산불은 어느 정도 방어선을 치는 게 가능하지만, 파이어네이도가 발생하면 그 방어선이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2020년 호주 산불에서 소방 인력을 아무리 투입해도 진압에 한계가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현상이었습니다.
결론
2020년 그 여름, 창밖으로 강변이 잠기는 걸 보면서 저는 출근 걱정이 없어서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생각입니다. 그게 인도양 수온 이변이 만들어낸 기후재난의 연쇄 고리 안에 제가 들어가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호주가 6개월 동안 불탔고, 아프리카가 잠겼고, 메뚜기떼가 수확물을 먹어 치웠고, 미국에 허리케인이 동시에 5개가 찍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국이 54일 장마를 맞았습니다. 이게 전부 같은 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시작점이 인도양 수온 2도 차이였다는 걸, 당시엔 아무도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포함해서입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지구의 수분 총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딘가가 말라붙으면 그 수분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쏟아집니다. 그게 이제 더 자주, 더 극단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당장 생활 속에서 기후 뉴스를 '남의 나라 이야기'로 넘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