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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장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늘은 스티로폼 접시에 랩으로, 과일은 비닐 포장지에, 과자는 또 다른 플라스틱 봉지에. 카트 안을 채운 물건 중에 플라스틱을 쓰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날 이후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울산에서 억새풀과 미생물로 플라스틱을 만들고 있다는 연구 소식을 접했을 때, 저도 모르게 영상을 끝까지 다 봤습니다.

바이오플라스틱, 억새풀에서 시작된다고요?
페트병 하나가 땅속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00년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트 카트를 가득 채운 플라스틱 포장재를 보고 나서야 그 숫자가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비닐봉투는 20년이 넘어야 썩고, 페트병은 500년이라니. 지금 이 순간 제가 버리는 것들이 제 손자의 손자 세대까지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황성연 박사팀은 2016년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원료는 뜻밖에도 억새풀과 팜 껍질 같은 농업 부산물이었습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Biodegradable Plastic)이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원료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땅에 묻으면 자연 상태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돌아가는 소재입니다.
제조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억새풀을 잘게 분쇄한 뒤 고압 수처리 공정을 거쳐 당(糖) 원액을 추출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반적인 공정이 황산 같은 독한 용매를 쓰는 것과 달리, 황 박사팀은 물만을 이용하는 친환경 공법을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이 당 원액은 직접 플라스틱이 되는 게 아니라 미생물의 먹이로 쓰입니다.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미생물이 당 원액을 먹고 배설한 물질이 바로 바이오플라스틱의 핵심 원료가 되는 거죠.
이후 200도에서 시작해 최대 240도까지 실리콘 오일을 매개로 온도를 끌어올리는 열처리 공정을 통해 비로소 단단한 플라스틱이 완성됩니다. 전체 공정만 20단계가 넘습니다. 기존 바이오플라스틱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낮은 내열성과 물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황 박사팀은 셀룰로오스(Cellulose) 나노 분산 기술을 접목했습니다. 셀룰로오스란 식물 세포벽을 구성하는 천연 고분자 물질로, 옛 선조들이 흙벽에 볏짚을 섞어 강도를 높인 원리와 같다고 황 박사는 설명합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보면서 이 비유를 들었을 때 "아, 이게 그냥 이론이 아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 원료: 억새풀, 팜 껍질 등 농업 부산물 활용
- 핵심 공정: 미생물 발효 → 배설물 추출 → 고온 열처리(최대 240도)
- 강도 보강: 셀룰로오스 나노 분산 기술 적용
- 환경부 기준 국내 플라스틱 배출량: 하루 평균 약 6,400톤(2018년 기준, 출처: 환경부)
자가치유 소재, 스스로 붙는 플라스틱이 진짜 있다고?
"플라스틱이 스스로 붙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좀 과장 아닌가 싶었습니다. SF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런데 황 박사가 딸에게 잘라낸 소재를 다시 붙여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 표정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황성연 박사팀이 2017년 개발에 성공한 자가치유(Self-Healing) 소재는 원유 정제 공정에서 산더미처럼 쌓이는 폐기물인 황(Sulfur) 화합물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가치유 소재란 외부 충격으로 표면이 손상됐을 때 별도의 처리 없이 스스로 결합을 회복하는 물질을 뜻합니다. 폴리우레탄(Polyurethane) 계열 소재에 다이설파이드(Disulfide) 결합을 도입해 이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다이설파이드 결합이란 황 원자 두 개가 이어진 화학 결합으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가역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이 특성 덕분에 소재가 잘린 뒤 약 15초만 지나도 어느 정도 접착력이 살아나고, 1분 후에는 1kg 이상의 무게를 견딥니다. 4~6시간의 회복 시간을 거치면 5kg의 하중도 버티는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이 소재의 활용 범위를 두고는 시각이 다양합니다. "아직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해저 케이블이나 지중 매설 전선 같은 산업용 분야에서는 이미 충분히 실용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땅을 파지 않아도 전선이 6개월에서 1년 안에 스스로 복원된다면 유지보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요. 이 연구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의 표지 기사로 실리기도 했습니다(출처: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 포장이 소비자에게 닿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소비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비닐봉투 유료화나 카페 내 플라스틱컵 사용 금지 같은 규제가 생기고 나서 저도 에코백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지만, 마늘을 감싼 랩이나 과일 포장 비닐까지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생산 단계에서부터 소재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황 박사팀이 개발한 생분해성 비닐은 6개월 뒤 물과 이산화탄소로 100% 분해됩니다. 일반 석유계 비닐과 나란히 흙 속에 묻어두고 6개월을 비교한 실험에서, 일반 비닐은 형태가 그대로였던 반면 생분해성 비닐은 종이처럼 잘게 찢어지는 수준으로 분해됐습니다. 생분해성(Biodegradability)이란 미생물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무기물로 전환되는 성질을 말합니다. 단순히 잘게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 개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에 더해 황 박사팀은 안심 스티커라는 응용 기술도 개발 중입니다. 전기방사(Electrospinning) 기술로 만든 나노 섬유를 활용한 것인데, 전기방사란 주사바늘 끝에 고전압 전류를 흘려 머리카락보다 수천 배 가는 실을 뽑아내는 기술입니다. 이 나노 섬유가 촘촘히 쌓여 있을 때는 빛이 산란돼 불투명하게 보이지만, 10도 이상의 상온에 노출되면 나노 섬유 구조가 붕괴되면서 아래 인쇄된 그림이 나타납니다. 한 번 나타난 표시는 되돌릴 수 없어 냉장·냉동 식품의 상온 노출 여부를 소비자가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제 경험상 마트에서 식품을 살 때 유통 과정에서 온도 관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답답했는데, 이런 기술이 실제 포장재에 적용된다면 소비자 신뢰 측면에서도 꽤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생분해 플라스틱이랑 일반 플라스틱이 겉으로 보면 뭐가 다른가요?
A. 외관상으로는 거의 구분이 어렵습니다. 황 박사팀이 개발한 생분해성 비닐은 블로잉 방식으로 제작해 일반 비닐과 유사한 형태와 질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차이는 땅에 묻은 뒤 드러나는데, 6개월 뒤 일반 비닐은 그대로지만 생분해성 비닐은 종이처럼 부스러집니다.
Q. 바이오플라스틱은 내열성이 약하다고 들었는데, 이 기술도 그런가요?
A. 기존 바이오플라스틱이 내열성이 낮아 쉽게 휘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황성연 박사팀은 셀룰로오스 나노 분산 기술을 접목해 이 문제를 극복했고, 기계적 물성도 기존 석유계 플라스틱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아직 약하다"라는 인식은 이전 세대 바이오플라스틱 기준으로 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자가치유 소재는 언제 실생활에서 볼 수 있나요?
A. 상용화 시기를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가치유 속도가 느려도 괜찮은 해저 케이블이나 지중 매설 전선 같은 산업용 분야는 상대적으로 빠른 적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소비자 제품에 적용되려면 생산 단가와 내구성 검증이 더 필요한 단계입니다.
Q. 안심 스티커는 이미 시중에 나와 있나요?
A. 현재 황 박사팀이 실험 단계에서 진행 중인 기술입니다. 30분에서 최장 24시간까지 시간 설정이 가능한 수준까지 구현됐다고 하는데, 실제 식품 포장재에 적용되기까지는 추가 인증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냉장 식품 유통 과정의 투명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꽤 기대되는 기술입니다.
결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됐지만, 마트 진열대를 보면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비자가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산 단계에서 소재 자체를 바꾸는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억새풀에서 시작해 미생물 발효를 거쳐 단단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고, 폐기물이던 황 화합물로 자가치유 소재를 개발하고, 나노 섬유로 식품 안심 스티커까지 만들어내는 연구들이 실제 포장재에 닿는 날이 멀지 않기를 바랍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국내 생분해성 소재 연구 동향을 한국화학연구원 공식 채널에서 직접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관심이 이런 연구들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