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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말벌의 천적이 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꽃밭에서 장수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뒤로 '저 녀석들을 어떻게 막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는데, 그 고민을 자연이 이미 해결해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벌매라는 새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벌 미행, 벌매는 어떻게 둥지를 찾아낼까요?
처음 벌매의 사냥 방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개구리 사체를 미끼로 놓아 땅벌을 유인한 뒤, 먹이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땅벌을 그대로 미행해 둥지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사냥 도구도 아니고 후각도 아닌, 순전히 '관찰력'과 '인내심'으로 먹잇감을 찾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땅벌은 지하에 은밀하게 집을 짓기 때문에 위치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서 땅벌이란 땅속 빈 공간에 집을 짓고 집단생활을 하는 벌로, 지면 위에서는 둥지 입구가 아주 작은 구멍 하나로만 보이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벌매는 바로 이 특성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벌매가 단순히 본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면 학습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 맹금류 중에서도 벌매는 학습과 관찰을 통해 사냥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동물의 '지능적 행동'을 실제로 눈앞에서 확인하는 건 책에서 읽는 것과 전혀 다른 충격을 줍니다.
말벌 천적으로서 벌매가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
제가 꽃밭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이 있습니다. 장수말벌 한 마리가 꿀벌 여러 마리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광경이었는데, 바닥에 떨어진 꿀벌들을 보면서 '만약 이게 양봉장이었다면'이라는 생각에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다행히 그날은 말벌이 자리를 피했지만, 만약 무리가 붙었다면 그 결과는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그 기억이 있어서인지, 벌매가 말벌 천적으로서 생태계 내 개체수 조절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벌매는 단순히 성체 말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말벌집 자체를 파괴하고 내부의 유충까지 모두 꺼내 먹습니다. 여기서 유충이란 아직 성체로 자라지 않은 어린 개체로, 이것까지 제거된다는 것은 해당 말벌 군락이 사실상 재건 불가 상태에 빠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곧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말벌을 대규모로 제거하는 게 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바로 '말벌도 생태계의 일부 아닌가?' 하는 반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말벌은 해충을 포식하고 꽃가루를 매개하는 역할도 수행하며, 단순히 '해충'으로만 분류하기 어려운 복잡한 위치에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이 또 다른 생태 불균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벌매처럼 자연이 설계한 조절 메커니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 벌매는 성체 말벌뿐 아니라 유충까지 제거해 군락 자체를 무력화합니다
- 공중에 매달린 말벌집까지 공격할 수 있는 동물은 벌매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 말벌은 해충 포식·수분 매개 역할도 하므로, 자연적 개체수 조절이 인위적 제거보다 바람직합니다

깃털 갑옷, 벌매가 독침을 무력화하는 신체 구조
벌매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말벌 둥지를 직접 파헤치는데 어떻게 독침에 쏘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궁금증은 벌매의 신체 구조를 알게 되면서 완전히 해소됐습니다.
벌매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피부 보호 깃털 구조에 있습니다. 눈 주변과 콧등 일부를 제외한 몸 전체가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빽빽하고 단단하게 겹쳐진 깃털로 덮여 있어 독침이 피부까지 침투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피부 보호 깃털 구조란 일반 조류보다 훨씬 두껍고 촘촘하게 배열된 외피 깃털로, 일종의 생체 갑옷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부리도 일반 수리과 맹금류와는 전혀 다릅니다. 벌집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유충을 꺼내기 적합하도록 바늘처럼 가늘고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톱 역시 땅을 파거나 공중에 매달린 둥지를 잡아뜯기 좋도록 발달해 있습니다. 다른 수리과 맹금류들이 새나 설치류를 낚아채기 위한 강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고도로 특화된 신체 구조를 가진 동물일수록 서식 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 환경이 무너지면 해당 생물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벌매가 살아가려면 말벌과 땅벌이 충분히 서식하는 온대·아열대 삼림 환경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새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벌매 서식지와 번식,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까요?
벌매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동남아시아나 열대 지방에만 사는 새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여름철 번식을 위해 일부 개체가 국내 깊은 산속까지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벌매는 겨울을 동남아시아에서 나고, 봄이 되면 번식지인 북방 지역으로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여기서 나그네새 혹은 통과조란 특정 지역에서 번식하거나 월동하지 않고 이동 경로 도중에 잠시 머무는 새를 뜻하는데, 벌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일부 개체가 실제로 번식까지 하는 사례가 확인되어 단순 통과조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번식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6월에 한 개에서 세 개의 알을 낳아 한 달 이상 품은 뒤 새끼를 키우는데, 처음 번식하는 어린 벌매는 보통 알 한 개만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컷은 먹이 사냥을 담당하고 암컷은 둥지를 지키며 새끼를 돌보는 역할 분담이 명확합니다. 새끼가 생후 25일쯤 되면 날개 길이가 50cm 수준으로 자라고, 어미가 먹이를 줄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유도합니다.
출처: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벌매는 국내에서 관찰 빈도가 낮은 희귀 조류에 해당하며, 깊은 산림 환경이 잘 보존된 곳에서만 드물게 목격됩니다. 벌매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벌매가 살아갈 수 있는 숲과 먹이 환경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벌매는 벌에 쏘여도 괜찮은 건가요?
A. 눈 주변 등 일부 노출 부위는 쏠 수 있지만, 몸 대부분이 비늘처럼 촘촘히 겹쳐진 피부 보호 깃털로 덮여 있어 독침이 피부에 닿기 어렵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말벌 둥지를 직접 파헤치는 사냥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눈 주변은 어떻게 보호할까요? 벌매의 얼굴 깃털은 다른 부위보다 촘촘하고 짧게 발달해 어느 정도 방어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벌매는 우리나라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주로 사람의 접근이 드문 깊은 산속 삼림 지대에서 여름철에 드물게 관찰됩니다. 번식 개체수 자체가 극히 적고 행동 반경이 넓어 일반인이 우연히 목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혹시 새를 관찰하는 분이라면 탐조 전문 커뮤니티에서 목격 기록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Q. 말벌이 꿀벌을 공격할 때 막을 방법이 없나요?
A. 꿀벌은 '열구(熱球)' 방어 전략을 사용합니다. 말벌 한 마리를 수백 마리의 꿀벌이 에워싸 체온을 끌어올려 죽이는 방식인데, 꿀벌 개체는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양봉 환경에서는 말벌 포획 트랩이나 입구 축소 방어판을 활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벌매 같은 자연 포식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벌매는 맹금류인데 다른 수리과 새와 어떻게 다른가요?
A. 일반적인 수리과 맹금류는 강하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새나 포유류를 낚아채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벌매는 부리가 가늘고 구부러져 있으며 발톱도 땅파기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벌 전문 사냥꾼'으로 특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꽃밭에서 말벌과 꿀벌의 싸움을 목격하고, 회사 건물 벽 틈에서 말벌집을 발견해 소방대원을 불렀던 그 기억들이 벌매를 알고 난 뒤 다르게 읽혔습니다. 인위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시도보다 이미 자연이 마련해놓은 균형이 훨씬 정교하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됐기 때문입니다.
벌매의 개체수를 억지로 늘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벌매가 살 수 있는 깊은 숲과 그 숲 안의 먹이 환경이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름 산에서 혹시 정체 모를 큰 새가 땅바닥을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다면, 한번쯤 벌매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