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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공룡발자국 화석지에 처음 갔을 때, 제가 느낀 건 경이로움보다 섬뜩함이었습니다. 저렇게 크고 강한 생명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 발자국 크기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구 역사에는 생물 종의 75% 이상이 단기간에 사라진 대멸종 사건이 무려 다섯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배경멸종과 대멸종, 어떻게 다를까요?
혹시 "멸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오랫동안 운석이 쾅 하고 떨어져 공룡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장면만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멸종의 90%는 훨씬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걸 배경멸종(background extinctio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경멸종이란, 마치 배경음악처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하나씩 천천히 종이 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쟁자가 등장하거나 서식지가 조금씩 바뀌면서, 특별한 사건도 없이 어떤 종은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조카들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는 걸 보면서 새삼 신기했는데, 정작 그 공룡들이 사라진 방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반면 대멸종(mass extinction)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대멸종이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이라는 짧은 지질학적 시간 안에 전체 생물 종의 75% 이상이 사라지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인간 수명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긴 시간이지만, 40억 년에 달하는 생명의 역사 전체 스케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지구에서 단 한 번이 아니라, 무려 다섯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 배경멸종: 경쟁·환경 변화로 조용히 진행, 전체 멸종의 약 90%
- 대멸종: 전 지구적 규모, 생물 종 75% 이상이 단기간에 소멸
- 멸종의 단위는 개체 수가 아니라 '종(種)'의 수
5차 대멸종, 원인은 운석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구 역사에 기록된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 그 원인들을 처음 정리해서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행성 충돌은 마지막 다섯 번째뿐이고, 나머지 네 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시작되었거든요.
1차 대멸종(오르도비스기 말)은 지구 전체가 얼음 덩어리로 뒤덮이면서 일어났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감하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고, 육지에 얼음이 쌓이니 바닷물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대부분의 해양 생명체가 수심 200m 이내의 얕은 바다에 사는데, 그 서식지 자체가 줄어들어버린 겁니다. 시골에서 한파를 맞으며 귀가 얼어붙는 경험을 했을 때 문득 "이래서 공룡들이 얼어 죽었구나" 싶었는데, 사실 공룡보다 훨씬 이전 생명체들이 먼저 추위에 쓸려나갔던 셈입니다.
2차 대멸종(데본기 말)은 원인이 더 복잡합니다. 육상 식물이 번성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온을 낮췄고, 풍화 작용으로 인과 질소 같은 영양염류가 바다로 대량 유입되면서 부영화(eutrophication)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부영화란 바닷속 영양분이 과도해져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녹조 현상과 원리가 비슷합니다.
3차 대멸종(페름기 말)은 역대 가장 규모가 큰 대멸종으로, 당시 생명의 95%가 사라졌습니다. 원인은 시베리아에서 100만 년 동안 이어진 초대형 화산 활동이었습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에 남아 있는 현무암 지대인 시베리아 트랩(Siberian Traps)이 그 흔적입니다. 두께가 얇은 곳은 400m, 두꺼운 곳은 3km에 달하고 면적은 유럽 대륙과 맞먹습니다. 화산 가스로 대기가 산성화되고, 햇빛이 차단되면서 광합성이 멈추고, 산소 농도가 현재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5종 중 1종만 살아남은 세상이었습니다.
4차 대멸종(트라이아스기 말) 역시 화산 활동이 주요 원인이었고, 이 틈을 타 공룡이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차 대멸종(백악기 말)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사건입니다. 6,600만 년 전, 지름 10km짜리 소행성이 시속 7만 km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습니다. 충돌 직후 30분 만에 아메리카 대륙의 공룡들이 열폭풍과 쓰나미에 쓸렸고, 이후 화산 연쇄 분출과 핵겨울 효과로 고양이보다 큰 육상 동물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충돌 이전에 인도 데칸 트랩(Deccan Traps)의 화산 활동으로 이미 생물 다양성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다양성이 유지됐다면 공룡이 그 충돌에서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출처: 영국 자연사박물관(NHM)).
6차 대멸종, 이미 시작됐다는 말이 섬뜩한 이유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6차 대멸종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이 그렇게 위기처럼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넘쳐나고, 도시는 번성하고, 치킨집은 오늘도 바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안전한 신호일까요?
과학자들이 현재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로 부르려는 논의가 한창입니다. 여기서 인류세란 인간 활동이 지층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연맹 총회에서 공식 선포를 시도했지만, 지층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현재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 지층에서 공통적으로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 콘크리트가 동시에 쌓이기 시작한 시점이 1945~1950년대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생물학적 지표도 있습니다. 전 세계 지층에서 갑자기 닭뼈가 폭발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1920년대부터 공장식 양계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매년 수백억 마리의 닭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만 해도 연간 10억 마리의 치킨을 먹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먼 미래의 외계 지질학자가 지층을 파헤친다면, 삼엽충 화석처럼 닭뼈를 이 시대의 대표 표지 화석으로 지목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속도입니다. 지구 역사에서 가장 빠른 기온 상승 사례 중 하나는, 약 2만 년 전부터 1만 년 사이에 4도가 오른 것이었습니다. 1만 년에 걸쳐 4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100년 사이에 이미 1도가 올랐습니다(출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생태계가 적응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넘어선 변화입니다. 기온이 오르면 인간이 직접 더워서 죽는 게 아니라, 농업 붕괴와 물 부족으로 인한 식량 위기와 전쟁이 뒤따릅니다. 2010년 중동 민주화 운동의 배경 중 하나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의 폭염으로 인한 밀 생산 급감이었다는 사실은 이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무서운 건, 지금 우리가 이 상황 속에서도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5차 대멸종 때도 공룡들은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테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대멸종과 그냥 멸종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일반적인 멸종은 특정 종이 하나씩 사라지는 배경멸종을 가리킵니다. 반면 대멸종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전체 생물 종의 75% 이상이 수십만 년 이내에 사라지는 사건을 말합니다. 개체 수가 아니라 '종의 수'가 기준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100종 중 75종이 완전히 소멸해야 대멸종으로 분류됩니다.
Q. 5차 대멸종 때 공룡 말고 살아남은 생물은 없나요?
A. 있습니다. 5차 대멸종 이후에도 조류(새의 조상), 소형 포유류, 악어류, 일부 파충류 등이 살아남았습니다. 특히 대멸종 생존의 공통 패턴은 몸집이 작고, 먹이를 가리지 않으며, 다양한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상어가 4차례의 대멸종을 모두 견딘 이유도 서식지와 먹이 선택의 유연성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Q. 6차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면 인간도 멸종하나요?
A. 현재로서는 인간이 단기간에 멸종할 가능성보다, 생물 다양성 붕괴로 인해 식량과 생태계 서비스가 무너지는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다만 과거 대멸종에서 최고 포식자는 예외 없이 멸종했다는 패턴은 주목할 만합니다. 플라스틱 감소, 육식 소비 줄이기,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 가지 방향이 현재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Q. 과거 대멸종의 원인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나요?
A. 지질화학적 분석이 핵심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산소 동위원소(isotope) 비율을 분석하면 당시 기온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동위원소란 같은 원소이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무게가 다른 변형 원자를 가리키며, 가벼운 산소와 무거운 산소의 비율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5차 대멸종의 경우는 전 세계 지층에서 같은 깊이에서 이리듐(Ir)이 대량 검출된 것이 소행성 충돌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결론
해남 공룡발자국 앞에서 느꼈던 그 묘한 두려움이, 이 주제를 파고들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대멸종은 지구 역사에서 다섯 번이나 반복된 사건이고, 매번 그 시대의 지배자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이 스스로 촉발한 여섯 번째 가능성 앞에 서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이번 대멸종의 원인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운석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플라스틱을 줄이고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는 일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해도, 아직 외양간을 고칠 시간이 남아 있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 치킨을 먹으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아닐까요?